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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는 조상대대로 차에 대한 문화가 깊었다고 합니다. 
    요즘 우리나라 현대인들이 와인을 즐기는 것은 뭔가 품격있고 멋있다고 생각하지만 차는 거의 안마시는 것 같아 아쉽습니다. 와인, 커피도 즐기면서 가끔 차도 마셨으면 합니다. 정말 다례, 다도는 정말 품격있고 매력있고 건강케 해주며 나를 바라보도록 하는 멋진 차인 것 같습니다.

    저는 아침마다 차를 마십니다.  몇 년 전부터는 다기를 꺼내 아예 가까이에 두고 마십니다.
    커피도 매우 좋아해서 즐기지만 아침에는 무조건 커피가 안 먹히고 제 몸이 우리의 녹차를 원해서 매일 마십니다.  대학교때 부총장님이 마련한 차동아리에 들어가 같이 다도를 배우고, 이천에서 열리는 차와 연결한 도자기축제에도 다녀왔고 가족들과 보성의 녹차밭 다원도 갔습니다. 전남 보성에서는 다향 대축제도 열리지요. 어릴 땐 이 떫은 걸 왜 마시지지? 했으나 이제는 갈수록 차가 좋습니다. 

    보성녹차밭, 다원에서
    이천 도자기축제 중 도자기와 어우러진 찔레꽃
    이천도자기 축제 때 전시된 주전자 등 다기

    차는 처음 음료수의 일종이나 약용으로 등장하였으나 차차 기호식품화하면서 취미생활과 연결되었고, 다시 일상생활의 도를 끽다(喫茶)와 관련지어 다도로까지 발전하게 되었다죠.
    차의 연원은 전설의 시대에까지 소급되지만, 중국의 경우 4, 5세기경 양쯔강유역의 주민들이 애호하기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다도의 성립은 기록에 의하면 8세기 중엽 육우(陸羽)가 『다경 茶經』을 지은 때부터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그 뒤 다도는 중국은 물론 우리 나라·일본 등에 널리 유포되었다고 합니다.

    우리 나라에도 삼국시대말에는 차가 있었고, 9세기 전반경에 성행하기 시작하여 고려시대에는 귀족층을 중심으로 다도가 유행하였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억불숭유정책으로 다소 쇠퇴하였으나 사원을 중심으로 그 전통이 이어졌죠.

    중국에서는 어마어마하게 비싼 보이차도 있지요. 선물받은 보이차도 맛이 좋습니다. 그런데 제가 느끼는 보이차는 죽은 차, 녹차는 살아있는 차 같습니다. 정말 무언지 모르겠으나 그런 느낌이 강하게 듭니다. 그래서 전 보이차는 선물은 받지만 제가 직접 사지는 않습니다. 녹차도 선물은 받으나 제가 직접 사는 것은 까다롭게 고르고 골라 지리산에서 딴 것으로 삽니다. 

    <삼국사기>에 신라 흥덕왕 3년(828년), 당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온 김대렴이 녹차 종자를 국내에 처음 들여와 기후가 따뜻한 지리산에 심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그 후 천 여 년이 흐른 지금, 당시 심은 야생 녹차가 깊이 뿌리 내린 하동의 녹차맛은 정말 일품이죠. 

    차(茶)는 발효도에 따라 발효율 5%미만의 녹차, 그리고 중간정도의 발효차가 우롱차, 발효율 70%의 발효차로는 홍차와 보이차가 있습니다. 

    또 같은 녹차라도 종류가 있고 녹차등급이 있습니다. 우전,세작(작설차),중작,대작 등이 있습니다. 

    <우전>
    4월 20일 곡우 전후에 첫 수확하는 첫 차(茶,Tea). 뽀송한 솜털이 나 있고 잎이 미쳐 다 펴지지 않은 어린 상태. 특유의 연하고 풋풋한 맛이 있고 약간의 단맛도 있는데 채취시기가 늦어질수록 탄닌같은 쓴맛이 강해진다. 우전은 일일이 손으로 따기에 구하기도 힘들고 값도 비싼 편.   

    <세작(작설)>   
    세작은 중작과 함께 우리가 흔히 녹차라고 알고 마시는 종류. 작설차 등이 여기에 속함. 대중적으로 녹차를 마신다 함은 바로 이 세작과 중작을 의미하는 경우가 대부분임.  깊은 풍미가 있어 즐겨 마시는 차. 

    <중작 / 대작>  
    이 시기면 차잎도 다 펴지고 커지며 맛도 더욱 풍부해지는 때. 시기와 크기에 따라 중작, 대작으로 구분. 대작은 대부분 티백용 녹차,  아이스크림이나 요리, 음료에 쓰이는 것으로 녹차 고유의 쓴 맛도 강해지는 시기. 차가 아닌 아이스크림이나 음식에는 이런 쓴 맛이 오히려 더 좋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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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설은 차나무의 어린 순이 돋기 시작하여 참새[雀] 혀와 같은 모양이 되었을 때 채취하여 덖어서 만들었다고 하여 작설차(雀舌茶)라 한다. 봄철의 곡우(穀雨) 전후에 찻잎이 이 모양인데 어린잎을 따서 구증구포(九蒸九曝)하여 만듭니다. 경칩과 곡우 사이에 찻잎이 자줏빛을 띠면서 참새의 혀와 같은 모양이 되면 3개가 달린 찻잎을 따서 덖고 비비고 말리기를 9번 하여 차를 만드는 것이죠.

    기록에 의하면 작설차는 『세종실록』「지리지」에는 경상도 8곳과 전라도 13곳의 토산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조선에서 작설차는 명(明)나라의 사신 대접과 금나라에 세폐(歲幣)에 반드시 들어가는 교역품이었다(『태종실록』 2년 5월 20일)(『세종실록』 9년 10월 30일)(『세조실록』 2년 7월 19일)[『성종실록』 즉위 12월 2일 3번째기사](『인조실록』 14년 2월 4일). 특히 성종대 이전의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 그 기록이 집중되어 있다.을 갖추는 시기이다. -

    분명 최초 유입은 중국에서 온 것이지만 우리나라 땅, 우리나라의 자연에서 난 차가 명품이 되어 오히려 중국에서 중요하게 대접한 것이 된 것입니다. 

    작설차 넣기

    19세기초에 초의(草衣)는 『동다송 東茶頌』을 지었고 차를 재배, 법제하는 방법 등 다도의 이론적인 면이나 실제적인 면에서 크게 정리하고 발전시켰습니다. 

    -초의는 그의 『동다송』에서 다도에 대하여 “따는 데 그 묘(妙)를 다하고, 만드는 데 그 정(精)을 다하고, 물은 진수(眞水)를 얻고, 끓임에 있어서 중정(中正)을 얻으면 체(體)와 신(神)이 서로 어울려 건실함과 신령함이 어우러진다. 이에 이르면 다도는 다하였다고 할 것이다.”고 하였다. 즉, 그에 의하면 정성스럽게 잘 만들어진 차로 좋은 물을 얻어 알맞게 잘 우러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차를 끓일 때 물은 매우 중요하다. 물은 차의 체이기 때문이다. -

    차인들은 물맛의 우열을 평하고는 하였는데 이를 품천(品泉)이라고 한다고 했습니다.
    초의는 좋은 물의 여덟가지 덕으로, 가볍고, 맑고, 차고, 부드럽고, 아름답고, 냄새가 없고, 비위에 맞고, 탈이 없어야 할 것을 지적하면서, 급히 흐르는 물과 괴어 있는 물은 좋지 못하고, 맛도 냄새도 없는 것이 참으로 좋은 물이라고 하였습니다.

    차에서 정말 물은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아무리 좋은 찻잎을 길러 정성껏 만들어도 물맛에 의해 끝이 결정되어 버리기도 합니다. 
    고려말의 이행도 품천을 잘하여 충주 달천의 물이 제일이고, 금강산에서 시작하여 한강으로 흐르는 우중수가 그 다음이며, 속리산의 삼타수(三陀水, 제주도 삼다수는 3가지 많은 제주의 특성을 표현한 것이지만 비슷하죠)가 세번째라고 평했고, 신라시대의 다천으로는 사선(四仙)이 차를 달여 마셨다는 강릉 한송정의 다천과 효명과 보천이 차를 끓였다는 오대산 서대의 우통수가 유명하였는데 이들 우물은 현재까지도 마르지 않고 있다죠.

    고려시대는 이규보가 기문을 쓴 바 있는 냉천정의 샘물이 유명하였고, 안화사의 샘물 또한 유명해서 이숭인은 안화사의 샘물 한 병을 차 한 봉과 함께 정도전에게 선물하기도 했답니다.

    조선시대는 속리산 복천암우물이 유명하여 신위는 한보정이라는 차실을 짓고 바위 밑에서 나는 샘물을 길어 차를 끓였고, 김노경은 두륜산 자우산방의 유천을 맛보고, 그 물맛을 높이 평가한 바 있고, 초의 또한 이 유천의 물맛을 자랑으로 여겼다고 합니다.
    좋은 샘물은 그때 그때 길어서 쓰면 좋지만, 샘물이 가까이에 없을 경우 물을 길어다 저장해서 쓰고 꼭 흙으로 만든 독에 헝겊으로 입구를 덮었죠.

     오늘날의 도시인들은 대부분이 수돗물을 쓰는데, 이를 다시 정수시키거나, 그렇지 못할 경우 수도꼭지를 완전히 열어서 한참 동안 물을 흘려보낸 다음 받아서 사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옛날에는 화로나 풍로에 불을 피우고 철병이나 차솥 등으로 물을 끓였죠. 즉, 오늘날 플라스틱 전기주전자는 절대 피하는 것이 올바른 것입니다. 
    좋은 차맛을 내기 위하여서는 물을 잘 끓여야 하는데, 이 때문에 차인들은 화력의 상태나 물이 끓는 정도를 정확히 구별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고 합니다.
    물이 끓는 정도에 따라서도 구별법이 따로 있었을 정도로 차에 대한 문화가 깊었다고 합니다. 

    차의 품질에 따라 온도에 차이를 두는데, 대개 70℃∼90℃가 적당하다고 하는데 이것은 일본식 다도가 들어와서 그런 것입니다. 일본식 다도문화를 우리 것인 줄 알고 따르고 있음이 안타까울 뿐입니다주위에 보면 흔히 볼 수 있는 다도회나 다도강좌들이 대개는 이런 일본식 다도를 가르치고 있죠. 우리는 그렇게 복잡하게 틀에 갇혀있지 않습니다. 일본은 차를 용기 안에 넣고 찌는 방식이고, 우리는 덖는 방식입니다. 비슷한듯 보이나 완전히 다릅니다. 덖은 우리 차는 70℃를 유지하지 않아도 됩니다. 

    본인 취향에 따라 뜨겁게도 좀 덜 뜨겁게도 마실 수 있는 것이고 아래 사진처럼 한국의 전통가마솥에서 덖어서 만드는 녹차는 일본 찐차에서 나는 풀냄새가 없고 구수한 맛이 납니다.   

    차를 덖는 모습

    차를 넣는 투차(投茶)에는 차를 먼저 넣고 탕수를 붓는 하투(下投), 탕수를 반쯤 붓고 차를 넣은 뒤 다시 탕수를 더 붓는 중투(中投), 탕수를 먼저 붓고 그 위에 차를 넣는 상투(上投) 등의 방법도 있는데 보통 대부분 하투로 하고 있죠. 겨울에는 하투, 여름에는 상투, 봄·가을에는 중투를 하는 것이 좋다. 

    다관에서 차를 우려낼 때는 그 시간을 잘 맞추어야 한다. 빠르면 차가 제대로 우러나지 않고, 너무 늦으면 차의 향기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찻잔에 차를 따를 때 차의 농도를 골고루 하기 위하여 몇 개의 찻잔을 왕복하면서 따른다. 대개 한번에 찻잔의 6분의 1 정도를 따른다. 다관의 찻물은 마지막 한 방울까지 따라야만 재탕 때 좋은 차맛을 보존할 수 있다.

    『동의보감(東醫寶鑑)』에 작설차는 “맛이 달고, 쓰며 독은 없다. 몸의 기(氣)를 내리게 하고, 소화를 촉진시킨다. 또 머리를 맑게 해 주고, 이뇨(利尿) 작용을 하여 당뇨를 치료하고, 화상으로 인한 독을 없앤다.”
    『산림경제(山林經濟)』「구급방(救急方)」에는 모든 독기를 없애는 데는 매번 세다(細茶) 즉 작설차와 백반(白礬) 3전씩을 가루 내어 새로 길어 온 물에 타 먹이면 곧 효력을 본다고 하였다.

    차를 마실 때는 손님이 적은 것을 귀하게 여겨 예로부터 혼자서 마시는 것을 신(神), 손님이 둘일 경우를 승(勝)이라고 하였습니다. 사극에서도 보면 우리 생활문화에서 차, 다도는 매우 중요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일본식의 복잡한 예가 아닙니다. 우리민족에게 차는 [일상다반사]의 뜻처럼 밥먹고 차마시는 보통으로 있는 흔한 일이었습니다. 물론 요즘엔 식사후 커피가 흔한 일이지만 말입니다.

     

    끓인 차를 마시기 전 찻물을 봅니다

    저는 명상을 합니다. 우리 민족이 정신수양을 하고 집중하는 데 녹차가 최고였고 즐겼다지요. 녹차는 머리를 맑게 해주고 체내 독소를 빼주는 등 육체만 건강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도 단단하게 바로 세우는 최고의 음료이니까요. 

    녹차는 색(色)·향(香)·미(味)의 세가지가 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것이 좋다고 하죠. 차의 색은 청취색(靑翠色)이 제일 좋고, 남백색(藍白色)은 다음이며, 그 밖의 황색 등은 품(品)에 들 수 없다고 한다.
    차의 맛은 달고 부드러운 것을 상(上), 씁쓰레한 것을 하(下)로 여깁니다.
    차의 향기는 독특한 것이기에 다른 향을 섞으면 좋지 않으며 차는 천천히 음미하면서 마시는 것이 좋습니다.

    차를 끓여 손님에게 접대하는 일에는 격식이나 예의도 중요합니다. 옛날 교양있는 집안에서는 다례를 꼭 알고 시집을 갔다죠. 학창시절 다도,다례를 배운 기억이 있습니다.

    찻물을 끓이는 것은 참 중요합니다. 물을 끓여 간을 맞게 하여 마시는 일이라고 합니다. 차에 소금을 넣어 간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간맞는 좋은 차가 되기 위해서는 물과 차 등이 알맞게 조화를 얻어 중정(中正)을 잃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보면 음다의 풍습이 성행한 곳은 주로 선가(禪家)였다고 하죠. 이것은 졸음을 쫓아주는 차의 약리적 효과 때문이기도 하였지만, 또한 차도의 정신과 선의 정신이 서로 합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다선일미설(茶禪一味說)이 생겨나게 된 것도 여기에 기인한다고 합니다.
    이러한 경향은 “덕이 있는 사람이 마시기에 가장 적당한 것이 차”라고 하였던 육우로부터 비롯되었고, 백장(百丈)·조주(趙州) 등의 선사에 이르러 그 깊이를 더하였고 특히, 조주는 도(道)를 묻는 제자에게 “끽다거(喫茶去)”라고 대답하기도 하였는데, 이것은 뒷날 선가의 유명한 화두(話頭)가 되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끽다는 평상심(平常心)이고, 평상심은 곧 도이자 선(禪)이라는 다선일미사상은 고려시대 이후 우리 나라의 선가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고려의 승려들은 차를 즐겼고, 차를 마시는 일상생활 속에서 진리를 터득하려 하였는데 지눌(知訥)이 “불법(佛法)은 차를 마시고 밥을 먹는 곳에 있다.”고 한 것이 그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차란 그 성품이 속되지 않아 욕심에 사로잡히지 않는다고 하면서 “차의 더러움 없는 정기를 마실 때 어찌 대도(大道)를 이룰 날이 멀다고만 하랴.”고 자부하기도 하며 흰구름 밝은 달을 벗삼아 마시는 차인의 멋은 바로 푸른 산을 대하여 앉아 삼매에 든 선사의 법열로 통하는 것이었다죠.
    김정희(金正喜)가 초의에게 써보낸 「명선 茗禪」이라는 작품은 차와 선이 한맛으로 통한다는 것을 강조해주고 있으며 또한, 이상적(李尙迪)이 찻잔에 떨어지는 물방울을 부처님의 수많은 화신(化身)으로 읊었던 것도 차를 통하여 선으로 나아갔던 것이고, 차를 마시면서 선열에 젖었던 예라고 합니다.

    정말 우리 민족에게 다도는 불을 피우고 물을 끓이며, 그 잘 끓인 물과 좋은 차를 간맞게 하여 마시는 평범하고 일상적인 취미생활이었습니다. 찻잔을 씻고, 물을 길어 나르며, 목마를 때 마시는 일일 뿐이죠. 중요한 것은 이 생활 안에서 도는 이처럼 평범하고 일상적인 일을 떠나 있지 않다고 합니다. 선도 또한 평상심을 떠나 있지 않기에 이 때문에 차와 선은 한 맛이 된다고 합니다. 

    초의선사 말씀을 다시 곱씹어 보면 모든 걸 담아 명쾌하게 말씀하셨음을 알 수 있죠. 
    "정조결(精燥潔)이면 다도진의(茶道盡矣)니라"  만들 때 정성을 다하고, 저장할 때 건조하게 하며, 마실 때 청결하게 하면 다도는 완성된다.는 이 말 그대로 선과 차는 다름이 아님을 보여 주셨습니다.

    녹차는 비가 오면 비가 오는대로, 맑으면 맑은대로, 흐린 날은 흐린대로, 바람이 강하게 부는 날은 또 그에 맞춰 차의 맛이 정말 다릅니다. 차와 물은 그대로지만 날씨에 따라서 또 달라지는 영향도 큰 것 같습니다. 

    오늘 아침도 녹차를 꺼냈습니다. 자꾸 새로운 녹차를 마시다 보니 오래된 것이 남아 있군요. 그것을 끓이니 색이 오래됐다는 것을 입증하네요. 그래도 녹차는 그냥 좋습니다. 녹차 향기 속에서 나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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